주왕조가 800년을 이어간 핵심은 창업자들의 덕(德)이었다. 후직·공유·고공단보로 이어지는 선조들은 농업을 중시하며 수렵 생활에서 농경 정주민의 역사를 일궈냈다. 초기부터 실시된 봉건제도는 주나라의 뼈대가 되었으며, 청동기 → 철기 시대로의 전환도 이 왕조 안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후대 전국시대에 이르러 봉건제도는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춘추·전국 구분점: 진나라가 한·위·조 세 나라로 분할되는 시점
제곡의 아들. 이름은 '기(棄) — 버릴 기'. 출생이 불길하다 하여 버려졌으나 자연이 보호해 다시 키워짐 (전형적 고대 신화 서사 — 모세 이야기와 유사). 자라며 농사의 재능을 드러내 요임금에게 발탁되어 농업을 책임졌다. 순임금 때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함. 요임금과 형제 사이이기도 하다.
후직의 증손자. 농사를 이어받고 목재로 집을 지어 정착생활의 씨앗을 뿌렸다. 수렵에서 농경 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끈 인물.
덕과 의를 실천. 북방 오랑캐 공격에 싸움 대신 도시 이전을 선택. 막내 계력의 아들 창이 훗날 주 문왕(서백창)이 된다.
선조의 농사사업과 법도를 계승하여 은나라 제후들이 모여들었다. 신하 숭후의 모함으로 은나라 주왕에게 투옥됐으나 신하 굉요가 뇌물로 구해냄. 주나라의 기반을 탄탄히 닦고 태자 발(무왕)에게 왕위를 넘기며 창건의 모든 토대를 완성했다.
군사적 열세에도 목야전투 승리로 은나라를 정벌. "암탉이 새벽에 울면 나라가 망한다" (빈계지신雌鷄之晨) — 달기를 경고하는 말. 조력자: 강태공(군사)과 주공 단(행정). 정벌 후 정치범 석방, 봉토 제공 → 봉건제도의 본격적 시작. 제나라·강태공 / 노나라·주공 단 / 연나라·소공 석
70세까지 낚시로 세월을 낚다 주 문왕에게 발탁. 흰 생선(은나라) · 붉은 까마귀(주나라)를 해석한 군사전략가.
조카 성왕을 삼촌으로서 보좌하며 주나라의 기초를 마련. 자신의 봉지 노나라를 마다하고 동생 소공 석과 왕실을 지킴. 형제 관숙·채숙의 반란 (관채의 난)을 진압. 성왕이 안정된 후에야 제후의 자리로 돌아감. 후일 공자에 의해 성인으로 칭송받은 인물.
정치적 혼란의 서막. 왕실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주나라 쇠퇴의 씨앗이 뿌려졌다.
가혹한 통치와 언론 탄압. 국인 반란이 발생하며 왕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포사에게 반한 12대 왕. 봉화 놀이로 신뢰를 잃어 서주를 멸망으로 이끈 마지막 왕. 중국판 양치기 소년.
BC 771년 관중 땅 지진 → 주나라 멸망의 기운. 후궁 포사를 왕비로 앉힘. 웃지 않는 포사를 웃기기 위해: 1차 비단 찢기 행사, 2차 봉화를 피워 제후들을 허겁지겁 달려오게 하기. 포사가 웃자 계속 반복 → 제후들의 신뢰 완전히 상실. 마침내 진짜 서융이 공격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최초의 패자. 관중을 등용해 부국강병 실현.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기치로 내걸었다.
19년의 유랑 끝에 귀국, 패권 장악. 역경이 인물을 만든다는 교훈의 상징.
남방의 강자. "솥의 무게를 묻다(問鼎)" — 주나라 왕실에 도전한 첫 제후.
+ 오나라 합려 (吳 闔閭) · 월나라 구천 (越 句踐)
봉건제 붕괴, 제후가 군주를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됨.
천명·덕보다 전쟁·양육강식의 정치 시대.
인간의 존재감이 강하게 부각되는 시대.